무술의 국적, 논쟁과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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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의 국적 논쟁과 현실

1998년부터 충주시에서는 충주무술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처음에는 매년 열리었으나 지자체장의 판단에 따라 격년 혹은 안 열린 해도 있는 우여곡절 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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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중앙아시아에서 기원한 레슬링은 전 세계에 퍼져 한국의 씨름, 일본의 스모로 변화하였다.

이 축제의 기획의도는 충주가 택견의 고향이니 이것을 발판삼아 전 세계의 무술을 모아서 축제를 하면 지역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지자체들이 자신만의 향토축제를 만들려고 애를 쓰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축제를 기획하면서 어느 지역의 어느 무술을 초청해야 할까는 문제가 남았는데, 공무원은 한국의 각 국 대사관에 공문을 보내, 당신 나라의 대표적인 무술을 초청해달라고 하였다. 중국이나 일본처럼 무술이 많은 나라는 상관이 없는데 그렇지 않는 나라들은 외교관 개인의 판단에 따라 무술이라기보다는 뉴질랜드의 마오리 전사의 춤처럼 전통문화에 가까운 것들을 소개해 주었다.

필리핀에는 아르니스라는 단봉을 사용하는 무술이 있는데, 수 많은 문파와 사람중 누가 필리핀의 아르니스를 대표하는 사람일까? 이 문제는 운 좋게 외교관이나 정부에게 먼저 연락을 받아 낙점을 받는 단체가 그 나라를 대표하는 단체로서 한국의 충주무술축제에 오게 되었다. 태권도의 국기원처럼 자타공인 공식단체가 없는 나라들이나 불가리아처럼 별 다르게 무술의 전통이 없는 나라들도 항공료와 체재비를 부담해주는 친절한 축제로 초대받아 한국에 오게 되었다.

의외로 유명한 사람들이 이 축제를 다녀가곤 했다. 예를 들어 소림사의 덕건스님. 소림 심의파의 장문인인 덕건스님이 왔지만 심의파를 이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담당자는 무조건 1m 이상 뜨는 시범을 보여달라는 주문을 했으니 속이 터질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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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들은 처음에는 대표의 자격이 없었으니 충주무술축제가 꾸준히 열리는 바람에 대표의 자격을 어부리지로 얻게 되었다. 충주무술축제를 주관하는 세계무술연맹은 유네스코 공식협력NGO로, 정식산하단체는 아니지만 이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UN산하기구인 유네스코의 한국위원회 정도의 수준으로 보게 되어, 세계무술연맹에 참여한 나라의 단체들은 UN총회처럼 정기적으로 회의를 하곤 했다.  (실제 회의석상에서 대표성이 없는 사람들끼리 회의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항의도 있었다. )

이 축제에 모인 단체들은 저 마다 내용과 성격이 달랐으나 20여년이 지난 지금, 무술들의 성격와 시범이 비슷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10여일의 축제기간에 각 국의 단체들은 상대 팀들과 교류하며 기술과 시범방식 혹은 정체성까지 베끼고 배우고 주고 받았다.

충주무술축제에서 의도하지 않은 공헌은 각 무술단체들에게 교류할 장을 만들어주었으며 실제 교류하였고 그 결과는 꽤 긍정적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의도치 않은 노력의 결과 무술이 한 국가를 대표할만한 문화의 하나라는 점이 국제적으로 알려졌으며 유네스코같은 기관에도 이런 시도가 전달되었다고 볼만한 증거들이 생겨났다. 국가적인 무술이 없는 나라들은 무술이 생겨났으며 기술도 발전하고 시범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무술이라는 것이 전파와 교류를 통해 발전하는 것이지만 이렇게 단기적으로 교류가 활성화되서 긍정적인 결과를 낳은 것은 인류 역사상 유래가 없었던 일이며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것이었다.

21세기는 단일민족보다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인종이 어떤 국가의 울타리에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보편적인 양식이 되었다.

무술은 음식과 같아서 국가적인 구분보다는 동아시아, 인도(차이나), 유럽 등 문화적으로 묶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들 들어 ‘태권도를 순수하게 수 천년전부터 내려온 민족 고유의 무술’이라고 본다면 이 명제를 지키기 위해 수 많은 왜곡과 위조를 해야하지만, ‘태권도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일정부분 영향을 받아 성립한 동아시아의 가장 현대적인 무도이다.’라고 정의한다면 왜곡과 위조가 필요없으며 태권도의 정체성을 더 잘 확립하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