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의 기원 다시 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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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의 기원 다시 점검
태권도의 기원 다시 점검

태권도의 기원 다시 점검

최근 한일간의 경제전쟁에서 자주 들리는 단어들이 있다. 국제 협업, 국가간 분업 등등의 용어다.

일본이 포토 레지스트리 불화수소를 생산하면, 삼성이 이것을 수입해다가 반도체 가공에 사용하고, 이렇게 생산된 반도체는 중국에서 사다가 전자제품을 만드는 구조이다. 대개 산업용 공작기계는 일본이 주로 만들고, 한국이 이를 수입해서 공산품을 만들어 수출하곤 했다. 이런 것을 국제간 분업, 협업이라 불러왔다.

한 국가에서 모든것을 생산하는 것 보다는, 각자 잘하는 것을 생산해서 수입 수출하며 사용하면, 생산단가 하락과 전문성도 생기고 하여 규모의 경제가 되기 마련이다. 즉 가까운 나라들은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데, 이런 것을 경제블럭이라고도 부른다.

 무술에서도 이러한 블럭을 볼 수 있다.

대개 동북아 무술이 유사한 부분이 있고, 중국 남부와 동남아 무술이 비슷하다. 중근동의 무술들도 그들 나름대로 유사성이 깊고, 유럽의 무술들도 그렇다. 근접한 지역에 각각의 민족과 나라들이 있다보니, 서로 전쟁도 많이 했고 인적 물적 교류가 많았던 탓이다.   

이미 유술벨트와 남권벨트에 관해서 기사를 올린 바 있다. 무술도 블록별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존재하고 명멸한다. 

아시아 무술의 맥, 유술벨트와 타격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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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일한 기원에서 발전한 유전자라는 것이 있을까?

그렇다면  태권도의 유전자와 혈통은 어떻게 분석해야 할까?

태권도는 오키나와 가라테에서 시작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태권도를 구성하는 유전자의 절반 이상은 분명히 오키나와에서 온 것이다.

오키나와 가라테는 본래 오키나와의 무술이 아니었다. 중국 남부, 복건성 광동성에서 떠나온 중국 남권이 그 뿌리다. 중국 남부의 권법을 통칭해서 남권이라 하며, 크게 5가지 권법이 대표적인데, 홍가권, 영춘권, 오조권, 백학권, 채리불권 등등을 말한다.

이 중에서 오키나와에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진 권법은 오조권과 백학권이다. 주로 복건성 해안지역에서 성행하였으며, 대만쪽을 경유하는 항로를 통해 오키나와로 전해졌다. 복건성과 오키나와는 지리적으로 가까우며, 중간에 대만섬을 통해 고대부터 많은 인적 물적 교류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왕조에 관계없이 중국을 당나라라고 흔히 불렀으므로, 중국에서 들어온 권법은 당수라고 불렸다. 당나라때 권법이 오키나와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명청대의 중국 남권이 오키나와로 흘러든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 남권의 특징은 의외의 부분에 있다. 스탠스가 넓으냐 좁으냐, 손의 공방범위가 크냐 작냐가 남권을 구성하는 정체성이 아니다. 중국 광동성 무술협회의 공식적인 견해에 의하면, 북파무술과 구별하는 남권만의 특징은 발력시에 소리를 지른다는 것 이다. 현재 한반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무술은 힘을 쓸 때 기합을 지르는것을 당연시 하지만, 기합을 강하게 내지른다는 것은 무술에서 일반적인 행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중국 북파무술들은 입으로 소리를 내는 기합을 사용하지 않는다.

태권도에서 기합의 존재는, 태권도가 본래 중국 남권의 뿌리 유전자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키나와 가라테에서 유래했으니 당연한 일 이다.

동지나해 바다를 건너서, 남권의 유전자속에 있는 기합과 발성이 오키나와까지 전해졌다. 오키나와 가라테는 20세기 초반까지도 중국 복건성에서 무술을 수입했다. 오키나와 가라테의 주요 유파중의 하나인 우에치류 공수도는 20세기 초반에 중국 복건성에서 13년간 무술을 연마했던 우에치 칸분에 의해 전해졌다. 우에치 칸분은 중국 복건성에서 11년간 사사한 후 현지에서 무술도장을 열어 지도를 하기도 했던 실력자다.

이렇듯 오키나와 가라테는 중국에서 수입된 시대별로 제각각 다른 형태를 보여주며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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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가라테는 본래 손을 펴고 사용하는 기법이 대다수이며, 주먹(정권)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런데 강유류등의 유파가 학교체육으로 들어가려는 과정에서, 손날이 위험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우여곡절끝에 주먹을 쥐게 되었다. 일본 본토로 상륙한 가라테는 시류에 부응하여 주로 주먹을 쥐고 수련하는 무술로 변모하였으며, 이 형태가 한반도에 수입되어 현재 태권도의 모체를 이루었다. 지금도 오키나와 본토의 전통 가라테 집안들은 주먹을 쥐지 않고 수련하는 곳이 많으며, 특히 우에치류 가라테는 절대로 주먹을 쥐지 않는다.

일제시대에 한반도에 들어온 가라테는 중국무술과의 융합이 일어난다. 태권도를 구성한 9대관의 역사를 보면 중국무술의 영향이 적지 않았음을 쉽게 알 수 있다. YMCA권법부의 윤병인 선생과 황기 선생의 무덕관은 태권도에 중국무술이 유입되었음을 증거하는 대표적인 유파다.

태권도가 성립되기 이전에 한반도에는 공수도, 당수도, 권법, 수박도 등 다양한 이름의 무술들이 존재했다. 황기의 무덕관, 노병직의 송도관, 최홍희의 오도관, 이용우의 정도관, 전상섭이 만든 지도관, YMCA권법부의 윤병인 선생이 만든 강덕원, YMCA권법부 출신 이남석이 만든 창무관, 가라테를 배운 이원국이 세운 청도관, 조선연무관 출신 이교윤이 설립한 한무관, 이렇게 9개의 관을 태권도의 모체가 된 9대관이라고 하며, 태권도의 기간도장이라고도 부른다.

중국 남부의 남권이 오키나와로 전해졌고, 오키나와에서 일본 본토로 전래된 가라테가 한국에 들어와서 중국 권법과 융합이 일어났고, 다시 태권도라는 무도로 재정립 되었다. 그렇다면 태권도는 동아시아 무술이 융합된 결정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중국 본토에서도 북파 권법과 남권이 융합된 형태는 흔하게 발견할 수 없는데, 한반도에 들어와서는 북파와 남파가 융합된 새로운 무도로 재창조 되었다.

6.25전쟁때 월북된 윤병인 선생에 의해 북한에서는 격술이라는 무술이 생겨났고, 격술에 대항하기 위하여 남한에서는 특공무술이 탄생했다. 1980년경 북한에 간 최홍희에 의해 북한의 격술은 ITF태권도로 대체되었으니, 남북한 현대무술의 역사와 발전과정은 실로 드라마틱하다. 이제 20세기의 한반도는 동아시아 무술의 용광로였다고 보아도 심한 비약은 아닐 듯 싶다.

지난 100여년간 동아시아 무술의 흐름과 융합과정을 지켜보며, 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태권도의 국적은 어디라고 말해져야 하는가?

태권도의 유전자는 동아시아 모든 무술이며, 현재 국적은 분명히 대한민국이다. 태권도는 국제간 협업의 산물이며, 그 결과가 최단기간에 올림픽까지 진입한 무술이 되었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이제는 단일 기원을 가져서가 아니라 다양한 뿌리를 가진 것이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는 시대가 되었다. 동아시아의 협업으로 태권도가 형성된 것은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뜻이다. 

당신은 19세기에 사는 사람인가? 21세기가 살아갈 사람인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는 자신의 결정이다.

다음의 동영상은 요즘 자신의 기원찾기와 관련해서 DNA검사 결과를 받아보고 충격을 받는 사람들의 동영상이다.

한국인 DNA에 인디언이? 美서 유행하는 ‘뿌리찾기’
[출처: 중앙일보] 한국인 DNA에 인디언이? 美서 유행하는 ‘뿌리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