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역사상 첫 아시안게임 첫 3연패,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 3개를 목에 건 ‘월드스타’ 이대훈(31)이 현장으로 돌아왔다.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29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리는 태권도 세계선수권대회에 이대훈은 한국 태권도 대표팀 코치로 함께 한다.
‘지도자’ 이대훈의 목표는 또 있다. 스포츠 행정가의 꿈을 안고 현역 은퇴 후 학업에 전념해온 이대훈은 이번 대회에서 현역 태권도 선수들을 대변하는 ‘세계태권도연맹(WT) 선수위원’ 선거에 출마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하는 900여 명의 선수들이 출전 하루 전 계체를 할 때 선수위원 남녀후보 각 1명씩 총 2장의 투표권을 행사한다. 선수위원 후보로 총 9명이 출사표를 던졌는데, 남자 후보에는 이대훈을 포함해 6명이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다음달 3일 이곳을 찾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과 조정원 WT 총재가 최다득표한 WT 선수위원 당선자 4명(남자 2명, 여자 2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앞서 지난해 11월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WT 선수위원으로 뽑힌 벨기에의 자우아드 아차브(Jaouad ACHAB. 남자), 브라질의 발레리아 산토스(Valeria SANTOS. 여자)를 포함해 총 6명이 WT 선수위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이대훈 일문일답
-11년 동안 태극마크 달다가 오랜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기분은?
=2021년 올림픽(도쿄) 이후 태권도 현장에 오랜만에 왔다. 해외 코치나 선수들이 반가워해주고 잘 왔다고 환영해줬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이런 걸 보면 역시 현장에 있어야겠다 스스로 느낀다.
-선수위원에 출마했다. 선거 운동은 어떤가.
=선수 할 때는 다른 나라 선수들이 사진 찍자고 해도 ‘좋아, 시합 잘해’ 이 정도 대화가 끝이었다. 지금은 표를 얻어야 하니 선수들과 더 많은 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영어가 잘 안 되도 먼저 다가가니 호응을 해준다. 작지만 손을 내미니까 하나가 둘, 셋이 돼 돌아오더라. 선수 때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들고, 지금이라도 선수들과 더 친분을 쌓고 적극적으로 다가가려고 한다.
-IOC 위원 목표도 있지 않나.
=맞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이라면 한번 쯤은 생각해봤을 자리다. 꿈꾼다고 도전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닌데 딱 제가 은퇴한 시점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최선을 다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WT 선수위원은 그 도전의 첫 걸음이다. 좋은 결과 내서 IOC 위원까지 열심히 노력할 생각이다.
-잠재적 후보들이 쟁쟁한데 나만의 강점은?
=IOC 선수위원들을 보면 선수들에게 인기도 많고, 대부분 올림픽에서 금메달도 땄다. 그렇지만 그런 것보다도 선수위원의 역할을 볼 때, 스포츠의 힘과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고, 선수들의 목표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본다. 올림픽 1등은 못 해봤지만 스포츠맨십이 있는 사람으로 선수위원이 돼 그들을 대변하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또 태권도는 힘이 있다. 축구 다음으로 회원국이 많다고 할 정도이고 평소 올림픽에서 소외된 국가에서도 메달을 노릴 수 있는 종목이다. 많은 나라의 스포츠 스타 중 하나가 태권도 선수라는 것을 생각하면 태권도가 가진 힘이 굉장히 크다. 태권도의 장점이 제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역 은퇴 이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시기가 있었나?
=햇수로 2년 동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목표는 학위(세종대 박사과정)를 끝내겠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에는 지도자를 하되, 스포츠 행정가의 꿈도 펼쳐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WT 선수위원도 작년 세계선수권대회(과달라하라)에서 하려고 했는데, 연기 여파가 있었다.
-선수권대회에, 선수위원 선거, 논문 심사까지 줄줄이 있다고.
=논문은 (돌아가서) 6월9일에 심사를 받는다. 여태까지 살면서 이번 5~6월이 제일 바쁜 거 같다. 네댓개 되는 일이 겹쳤다. 방송 촬영에 대전시청 지도자 활동, 대표팀 지도자 활동, 선수위원 선거… 정신이 없다. 선수 때는 이렇게 바쁜 적이 없다. 훈련하느라 바빴고 운동 아니면 인터뷰 하루에 한 두개 정도였다. 지금은 과부하가 걸리더라.
-체력은 자신있는 편이잖나.
=체력은 자신있다. 그래서 밤 새서 공부해도 괜찮은데, 밤 샌 다음날 졸음은 못 이기겠더라. 너무 졸립고 하다보니 늦잠을 잔다던가, 평상시 답지 않은 실수가 나온다. 요즘 들어 ‘왜 이렇게 어리버리하냐’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전에는 똘똘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하하.
-선수위원이란 스포츠외교이고 정치인데, 정치 활동은 완전 다른 영역이다. 어떻게 준비하나.
=그 동안은 외교나 정치에 대해 잘 의견을 표출하지 않았다. 자칫 문제가 될 수도 있어서 조심스러웠는데 이제는 명확한 주관을 갖춰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운동할 때는 내가 먼저 손해보거나 굽히고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일이 없었는데 은퇴하고 보니 모든 것이 정치를 필요로 한다. 내 힘으로 안 되는 부분에 많은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다. 정확한 판단을 위해 주변분들의 의견을 많이 듣는다. 차근차근 공부하면서 도움도 많이 요청하고 많이 배울 생각이다.
-늘 변화와 도전을 시도해왔다. 선수 시절 도전과 현재 도전 어떻게 다른가.
=은퇴 후가 더 어렵다. 선수 때는 제가 변하고 도전하고 열심히 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구조라, 부족하면 제가 더 열심히 하고, 자신과 싸우는 거였다. 은퇴 후에는 내가 열심히 한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지 않다. WT 선수위원만 봐도 저 혼자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역시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도움이 필요하다. 선수 때와 결이 다르다.
-이번 대회 금메달 기대는?
=제가 감히 예측을 해도 되나 싶지만, 남자에서 금 2개, 여자에서 금 2개 나오면 충분히 잘한 거라고 생각한다. 금메달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체급에서 메달 따면서 점수 올리는 것도 중요하다. 첫 판에 지는 게 아니라 8강, 준결승까지 올라가서 지는 게 중요하다. 대진표 운에 따라 노 메달인 경우도 있겠지만, 한국 선수의 가능성 볼 수 있는 대회가 됐으면 좋겠다.
-29일(현지시각)에 68㎏급 경기가 있다. 포스트 이대훈에 대한 기대는?
=제가 코치된 지 두달밖에 안 되어서 대표팀에 상주하면서 훈련을 지도한 건 아니다. 63㎏에는 파리올림픽 준비하는 주축 선수들이 2~4명 정도 있다. 이 선수들이 이번에 경쟁 통해서 대회 나온 거다. 올림픽 전에 열리는 가장 큰 대회이고 여기 결과가 올림픽에서 역할로 이어질 것이다. 63㎏에 나온 김태용 선수나 68㎏에 진호준 선수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둘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서 올림픽에 우리 나라 선수들이 최대한 많이 출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첫 주자인 진호준이 좋은 성적 내도록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