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의 당수도? 공수도? 가라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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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당수도? 공수도?  가라테?

당수도? 공수도? 

가라테(空手道) 또는 가라테(空手)는 류큐 왕국 시대(1429년-1879년)의 오키나와에서 시작한 타격기를 특징으로 하는 무술이다. 가라테의 기원에는 여러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오키나와 고유 권법인 티(手, 일본어로는 테라고 읽지만, 오키나와에서는 티라고 한다)에 중국의 무술이 가미되어 발전해 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류큐 왕국에서 한학 등의 학문과 함께 귀족들의 기초소양이었지만 가라테는 근대에 오키나와에서 일본 본토로 전해진 뒤 1933년 일본 무덕회에서 일본의 무도라는 정식 승인을 받아 오키나와에 일본 무덕회의 지부가 설치되었다. 1945년 후는 세계 각지에 퍼졌다. 현재 보급되고 있는 가라테는 경기 방식의 차이 때문에, 상대의 앞에서 멈추는 촌지(寸止,슨도메)를 채용하는 전통 가라테와 직접 타격을 허용하는 풀 콘택트 가라테, 보호구를 착용해 포인트제로 직접 타격을 하는 보호구 가라테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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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가라테는 타격기가 주이지만, 오키나와의 전통 가라테에는 관절기와 던지기, 다리 걸기 등을 포함하고 있었다. 옛날에는 가라테 외에 봉술, 차, 쌍절곤 등 무기도 함께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오키나와에서는 현재도 많은 오키나와 가라테 유파가 전통 기술과 단련법을 유지하고 있지만, 일본 본토의 유파에서는 실전된 기술을 다른 무술로부터 도입해 보완하여 종합무술로 나아가려는 유파도 존재한다.

명칭의 변천 (테, 당수(唐手), 가라테(空手) * 당수와 공수의 일본어 발음은 같다.)

가라테는 원래 메이지 초 오키나와에서 테(手, 류큐어로 ‘티’라고 읽음)나 가라테(唐手, 류큐어 투디, 토디)로 불렸다. 테(手)는 류큐 고유의 권법을 가르치며 가라테는 중국에서 전래한 권법을 가리킨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1901년 가라테가 오키나와에서 학교 체육에 채용될 때부터 당수의 류큐 발음인 토디에서 일본 발음인 가라테로 바뀌어 당수는 류큐 권법 일반을 가리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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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의 교아하곤짓키 묘

당수가 아닌 공수(空手)라는 표기의 시작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18세기에 편찬된 정사 『구양球陽』에 교아하곤짓키(京阿波根実基, 생몰년대 이상. 16세기경 류큐 왕국의 무술가, 오키나와 무술의 원조로 여겨지고 있다.)가 가라테 실력이 있었고 기록하고 있지만 이 가라테가 오늘날 가라테의 직접적인 원류인지는 사료의 부족으로 확실한 판단이 어렵다. 후나코시 키친에 따르면 오키나와에서 전통무술을 가라테라고 부르기도 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당수唐手 가라테인지 공수唐手가라테인지는 불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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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온을 연무 중인 하나시로 쵸모 (1869-1945)

오늘날 알려진 가라테 표기는 1905년 하나시로 초모(花城長茂, 1869년-1945년, 오키나와 무술가. 20세기 초반 잘 알려진 가라테가이다.)가 빈손이라는 뜻의 공수공권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 처음이다. 그 후 이따금 가라테 용어가 문헌에서 눈에 띄다가 1929년 게이오대학 당수연구회(사범 후나코시 키친)가 반야심경의 공空의 개념을 참고하여 사용한 이후 이 표기가 도쿄를 중심으로 퍼졌다.

1936년 10월 25일, 오키나와의 나하에서 ‘가라테 대가 좌담회(류큐신보 주최)가 열리고 이때 당수를 공수로 고쳤다. 1960년대까지는 당수 표기도 드물지 않았지만, 현재는 공수도空手道 한자를 사용한 가라테의 표기가 일반적이다.

 

道도라는 단어의 부가

가라테(당수)에 도道를 붙인 가라테도의 표기의 시작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후나코시 키친에 의하면 당수라는 표기는 자주 중국 권법으로 오해받아 게이오대 당수연구회 멤버들과 상의하여 “일본권법 가라테”로 바꾸었다고 한다. 게이오대 가라테부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1929년 또는 1930년이었다. 오키나와 가라테는 아직 일본 무술이 아니었으므로 일본 정신을 불어넣어 일본의 무도로 개조하기 위해 당수도가 아닌 공수도 가라테로 바꾸었다고 한다.

후나코시 키친이 사범을 지낸 도쿄대 당수연구회에서도 이 시기에 ’당수도‘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이유로 오키나와 당수는 겨루기의 기법을 알리지 않은 형型을 수련 하니 이것은 당수도로 가기 위한 전 단계에 불과하며 시합을 가미해야 당수도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보면 무술에 도道라는 말이 붙는 것은 정신적인 가치를 부여한다기 보다 경기를 통한 스포츠화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검도, 유도 등의 ‘도道’도 경기화, 스포츠화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일본 위키피디아 가라데 항목을 참조하여 글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