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 몸은 자연상태에서 환경에 적응하도록 최적화되었다는 것이 지금 우리의 과학적인 상식이다. 동물들은 먹는 것 외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싸움을 한다. 호랑이나 고양이는 앞발로 할퀴는 것이 주특기이며 황소는 들이받는 것이 주특기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자연상태에서 어떻게 싸워야 진화학적으로 가장 최적화된 싸움을 하는 것일까? 200년 전에 권투라는 경기를 전혀 본 적이 없고 격투기를 접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싸움하는 것을 가정해 보면 분명히 머리카락을 잡고 흔들고 몸을 밀면서 상대를 넘어트리려고 할 것이다. 직립보행을 하는 인간에게 넘어지거나 등을 돌린다는 것은 싸움의 종료와 승리를 의미한다.
사람은 넘어지면 싸움을 종료해야 하지만 최근에는 주짓수의 유행으로 넘어져도 싸움은 끝나지 않고 탭을 쳐야 끝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도 대부분 동물에게 누워서 배를 보이는 것은 항복의 표시이며 인간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성인들은 권투를 배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위급상황이 되면 왜 권투의 대적세를 취하고 상대를 노려보는 것일까? 권투라는 경기는 글러브를 끼고 하체를 공격하지 못하며 일정한 크기의 링에서 싸우도록 정해져 있는 스포츠이다.
반대로 글러브를 끼지 않고 하체를 공격할 수 있고 링 위가 아니라면 권투의 자세를 아무런 쓸모가 없다. 일단 주먹을 쥐었을 때 손의 중수골과 기절골이 노출되는데, 이곳은 신체의 뼈 중 아주 약한 부분이라 조그만 충격에도 쉽게 골절될 수 있다. 그러니까 나의 약한 곳으로 상대를 공격하면 손의 부상은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다.
글러브를 끼지 않은 이상에, 권투식 기법으로 공격하는 것은 아주 불합리하다. 맨손 무술은 가라테는 손을 단련해서 단단하게 하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지만, 정권을 단련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공격이며 설사 정권을 무쇠처럼 단련했다 할지라도 정권 공격은 비효율적이다.
손은 무엇인가를 잡기 위해 진화한 것이지 정권을 쥐고 단단한 물체를 가격하기 위한 용도가 아니다. 용도의 전용이며 손의 주된 용법이 아닌 부수적인 기능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는 것처럼 잘못된 행동이다.
즉 권투는 아주 특수한 형태의 격투를 하는 셈이며 그것은 아무리 세게 쳐도 손을 다치지 않는 글러브와 붕대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글러브를 끼지 않은 이상 정권으로 공격한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행동인데, 권투의 손기술을 격투의 정석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권투를 배우지 않은 사람들조차 격투 상황에서 주먹을 쥐고 상대를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이제 권투의 독에서 빠져야 한다. 권투를 훌륭한 스포츠이며 격투기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거나 글러브가 없다면 실제 사용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자연상태에서 올바른 격투술은 어떤 것일까? 일단 레슬링을 들 수 있다. 고대올림픽부터 정식종목은 레슬링은 중앙아시아에서 탄생해서 전 세계에 퍼졌으며, 한국의 씨름, 일본의 스모, 몽골의 부흐도 레슬링의 변화한 형태이다. 상대를 잡고 흔들고 넘어뜨려서 승패를 가르는 경기는 인간의 본성에도 부합한다.
자연스러운 격투기, 안 배워도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격투기란 손바닥을 편 상태로 시작해야 한다. 손바닥을 펴면, 잡을 수도 있고, 손날도 때릴 수도 있으며 손바닥 자체가 면적이 넓어 좋은 방어 수단이 될 수 있다. 손바닥을 펴도, 주먹을 쓸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손을 쥐어 정권을 만들 수가 있다. 가라테 식으로 정권을 단련한 사람에게는 정권이 좋은 무기가 될 수 있다.
권투의 독에서 빠져야 한다는 것은 권투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격투의 기본자세가 손을 편 상태가 됐을 때 더 많은 기술을 가능성을 볼 수가 있으며 부상 방지와 효율적인 공격을 할 수 있다. 주먹은 무언가를 잡기 위해 손을 구부린 형태일 뿐이지 그 면으로 무엇을 때리라는 뜻이 아니다.
권투선수는 주먹을 쥐어야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손을 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