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는 도수 무예로 분류한다. 도수 무예는 맨손만 사용한다는 뜻인데, 원래 모든 무술 유파는 종합적인 것을 지향하기 때문에, 맨손뿐만이 아니라 각종 무기술과 단련법, 심지어 몸의 부상을 방지하거나 치료하기 위한 약 처방까지도 존재한다.
태권도가 도수 무예가 된 것은 비교적 늦은 시기에 무술로 성립했기 때문에 이미 도검과 같은 무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총이 있는 마당에 구식 병기를 굳이 배울 필요가 있었겠냐는 나름대로 합리적 생각이다.
하지만 아직도 인류 역사상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인 무기는 칼이다. 2018년 미국의 무기사용에 의한 사망 건수에 의하면 권총만은 6,603건 대비 나이프는 1515건이었지만 흉기류로 범위를 넓히면 숫자는 훨씬 늘어난다. 무기를 든 상대에서 맨손으로 상대하겠다는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총기류를 휴대하지 않는 경찰들도 삼단봉이나 경찰봉을 휴대하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만약 태권도에 무기술 도입을 결정한다면, 태권도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태권도에 외연을 확장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태권도의 정체성이 도수 무예에서 종합무예로 넘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태권도에 무기술 도입을 결정한다면, 태권도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태권도에 무기술 도입은 적절할까? 태권도에 무기술 도입이 필요하다면 바로 봉술이다. 전통무기인 도검과 창은 현대사회에서 기능을 상실하였으며 날붙이가 있는 무기술을 배울 때 비용과 위험이 커진다.
하지만 봉술은 일상생활에서 소지할 때와 사용할 때 도검과 같은 위화감은 느끼지 못한다. 그냥 나무막대기일 뿐 대걸레 자루 이상의 느낌은 들지 못하여 일반 시민들에게도 위협감을 주지 못할 것이다.
봉술의 가장 큰 장점은 겉보기에 위협적이지 않으며 상대를 죽음에까지 이르지 못하게 한다. 무협소설에서 소림파가 봉술을 주로 사용하는 이유는 승려가 살생하면 안되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두 번째 장점은 위의 첫 번째와 연관이 되는데, 위협적이지 않아 보여도 훈련을 통해 위력적으로 만들 수 있다. 봉이 타격을 주지 못할 것 같지만 훈련받은 사람의 봉술은 매우 강력하다. 죽도 검도는 사실 봉술에 가까운데 보호구를 입고 맞아도 그 충격이 몸속으로 전해진다.
세 번째 장점은 봉술을 피트니스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봉을 들고 하는 체조와 피트니스법이 많은 이유는 도구를 들게 되면 몸의 움직임이 제한되어 신체를 조율하기에 적당하며 봉의 무게에 따라 웨이트 트레이닝의 효과를 볼 수 있게 한다.
봉술을 도입하면, 태권도 성인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도구를 들고 하는 훈련을 좋아하여 태권도에는 여러 가지 도구 수련법들을 속속 도입하는 추세이다. 봉술은 운동량도 많고 피트니스도 가능하며 유사시에 호신술로 적합하므로 성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콘텐츠다.
태권도에 봉술을 도입하면, 유아체육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 태권도 성인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태권도의 봉술 도입이 성공하면 경찰 대상으로도 봉술을 보급할 수 있다. 태권도가 맨손 무예고 타격기이기 때문에 상대를 상처 없이 제압해야 하는 경찰 입장에서 태권도를 사용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현재 경찰은 결과에 대한 법적 부담 때문에 함부로 총기를 쓸 수 없으며, 테이저건과 가스총, 삼단봉을 갖고 있다. 테이저건은 두꺼운 옷을 입었거나 범인이 저항할 경우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고, 가스총을 맞아도 도주가 가능하며, 삼단봉은 사용법이 익숙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현재 경찰에서 삼단봉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다.
일본의 사례를 보도록 하자. 일본에서는 경찰봉은 경장(警杖)이라고 하는데, 90cm, 120cm, 180cm의 세 가지 종류를 사용한다. 일본 경장술은 장술전문유파인 신도몽상류에 기반하고 있다. 1927년 일본 경찰청 무술대회에서 후쿠오카현에서 참가한 시미즈 타카지(清水隆次)의 신도몽상류 장술이(神道夢想流杖術)이 호평을 받아 경시청의 장술 사범이 되었다. 일본 경장술은 계속 발전하여 상대에게 부상을 안 입히는 방식의 체포술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태권도에 봉술을 도입하게 되면, 봉의 크기는 내 가슴까지 오는 중봉이라야 한다. 내 키를 넘어서는 장봉은 휴대도 힘들고 대부분 체육관이 천장이 낮으므로 수련이 불가능하다. 태권도에 봉술을 도입하기 위한 난관은 끝도 없이 많겠지만 이것을 다 극복하고 봉술의 도입을 결정했다면 1년 안에 진행하는 등의 졸속으로 하지 말고 4-5년의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연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봉술의 기술 도입이 문제가 아니라 시합은 어떤 식으로 만들까, 일선 체육관에는 어떤 식으로 보급할까 등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