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블록(주) 신창섭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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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블록(주) 신창섭 대표

요즘 핫한 비트코인이나 블록체인 기술. 많이 들어봤지만 무엇인지는 모르는 기술. 이 블록체인 기술을 태권도에 접속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태권도 7단 신창섭 대표.

태권도계에서도 잘 알려져 있는 신창섭 대표는 운동을 하는 사람이 사업을 하면 안된다는 속설을 깨고 가장 첨단기술을 가장 IT기술과는 상관없는 태권도와 접목하겠다는 아이템을 들고 나왔다. 

처음에는 ‘뜨거운 냉커피’처럼 모순된 아이템이라고 생각했는데 신창섭 대표는 의외로 이것에 대한 대답과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태권블록(주)이 있는 구로동의 한 벤쳐타운에서 신창섭 대표를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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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창섭 사범과 태권도

▷ 언제부터 태권도를 하셨나?

저희 집 사진첩을 보면 제가 태권도장 운동복을 입은 노는 사진이 있는데 6살쯤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기억이 잘 안 납니다. ㅎㅎ 이후 중학교 1학년 때 이소룡의 영화를 보고 나도 저렇게 강해지고 싶다고 해서 쿵푸도장을 몇 개월 다니다가 친구 소개로 태권도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처음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던 도장과 스승님에 대해서 한 말씀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만안초등학교 건너편에 있던 국일 태권도장에서 흰띠 부터 시작했습니다. 관장님 성함은 배진복입니다. 무덕관이라고 말씀해 주셨고 겨루기 선수 출신이셨습니다.

당시 태권도장은 겨루기 중심의 훈련을 했었습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어느 날 관장님께서 회색 벽돌을 놓고 저에게 한번 격파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메주먹으로 힘껏 내리쳐 보라고 하셨는데 진짜 그 벽돌이 반으로 격파 되었던 순간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배진복 관장님은 훗날 세계태권도한마당 손날 격파왕이 되셨습니다. 작은 체구에 부드럽고 탄력적인 동작으로 체중을 실어 완파하는 모습은 아주 인상적입니다. 수련에 정진하셔서 현재 9단이 되셨는데 제자로써 훌륭하신 스승님께 태권도를 시작하게 된 것은 감사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자주 인사드리지 못해 송구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배진복 관장님께서 9단 심사 하시는 날에 국기원 심사장소에 찾아뵙고 그 영광의 자리에 함께하게 된 것은 부족한 제자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실천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대학은 어디를 나왔는지?

저는 1992년 경희대학교 태권도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저는 태권도 전문 선수가 아닌 학력고사 성적과 체력실기, 태권도 실기를 통해 입학한 학생이었습니다. 훗날 생각해 보니 당시 정원이 40명이었는데 특기생 12명 외 여자 동기생이 8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러니 일반 남학생 20명 선발 인원에 합격을 했으니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죠. 나중에 보니 역대 여학생이 제일 많이 입학한 학번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왜 태권도 학과를 진학했는지?

뭔가 처음부터 큰 꿈을 갖고 진학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저는 공대 진학을 꿈꿨습니다. 발명대회에 나가 입상도 하고 했거든요.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태권도는 당시 성장 통으로 무릎이 아파 수술도 했었는데 그 통증에서 벗어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저에게 세상을 맞서는 용기를 갖게 해 주었는데 그런 부분이 저를 태권도학과로 진학하게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학과 이름이 체육학과보다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선생님, 어머님의 반대도 있었죠. 당시만 해도 체육대학은 공부 못하는 사람이 간다는 편견이 강할 때였거든요. 그래도 쉽지 않았던 준비 기간을 거쳐 좋은 결과가 나왔고 그때부터가 태권도인으로써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 태권도계에서 그동안의 이력을 말해달라.

저는 대학 재학 때부터 체대입시학원, 태권도장을 운영했었습니다. 또한 당시 대한태권도협회(KTA)에서 겨루기 점수 채점기 및 전광판(점수 전자 표출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우연히 대회 마다 설치 및 관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제가 몇 년 간 전담으로 일을 했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 병역을 마치고 외국에 태권도 사범으로 나갈 방법을 찾던 1999년 말경 당시 태권도장 프랜차이즈로 알려진 호키태권도, 회사명 한국태권도경영연구소(소장 김진원)에서 태권도를 관광체험상품으로 진행하는 사업부서의 담당 대리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호키태권도 프랜차이즈 경영, 지도 자료 개발, 지도자 교육, 해외파견시범단 등 업무를 하게 되면서 많은 경험을 쌓게 되었습니다. 이후 2002년 미국에 태권도 사범으로 갔다가 한국에 와서 태권도장 현장에서 지도하다가 2004년 키즈태권도로 알려진 ㈜한국태권도컨설팅에 과장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태권도 프랜차이즈 업계는 호키태권도, 키즈태권도, ATA코리아, 한국마샬아츠월드, 월드베스트태권, 태비태권도 등 많은 회사가 경쟁을 벌일 때였습니다. 이때 새로운 미래형 콘텐츠 개발에 대해 많은 연구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상담 PPT개발, 영상지도를 위한 동영상 콘텐츠 개발, 지도자 세미나 기획 등이 생각납니다.

퇴사 후 새로운 도전을 위해 2007년부터 다음카페에 T3M-티쓰리엠도장경영아카데미를 통해 태권도장 경영, 지도 및 최신 정보들을 제공하면서 일선 지도자들과 소통을 해왔으며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브랜드 개발 및 콘텐츠 개발을 위해 대전으로 내려가 네오블랙벨트센터(NBB)를 개관하고 태권도장에서 새로운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성인 태권도 동호인을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성인 수련생 모집을 위해 여러 광고 방법, 인터넷 홍보, 수련 커리큘럼, 도장 인테리어 등 많은 연구를 했는데 이것이 밑거름이 되어 2008년에 KTA 전국 태권도장 경영 및 지도법 경진대회에서 경영법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태권도 언론에도 소개되고 하면서 많은 분들이 도장을 찾아와 노하우 공개를 요청하셨습니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일선 지도자들이 어렵다고 하시는 품새와 격파를 중심으로 수련체계를 만들었는데, 소개를 하면 품새는 흰띠~빨간때까지 배우는 품새가 태극1-8장, 창헌류 10개, 팔괘까지 20여개가 넘는 품새를 지도했는데 모두가 어리둥절해 했었습니다.

당연히 태극 품새 지도도 어려운데 다른 형태의 품새까지 지도하는 것을 보니 어려웠을 겁니다. 또한 격파도 당시 2.5cm 송판을 흰띠부터 모든 유급자들이 옆차기, 앞차기, 돌려차기, 뒤차기, 뒤후려차기 등으로 격파하는 것을 보고 또 한번 어리둥절해 하셨었죠. 그 비결은 무도태권도를 지향하고 품새는 암기가 아닌 원리를 이해하며 체득하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하지만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저는 또 다시 도전의 길로 들어갔습니다. 이후 안해본 일이 없는 것 같아요. 태권도 분야는 KTA 강사 활동을 중심으로 열심히 활동을 했고 태권도 외 분야도 많이 도전하고 실패도 경험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었던 것 같습니다.

얘기가 좀 길어지네요. 그리고 2011년 국기원에 경력직 공채로 입사하여 해외전략팀 마케팅 과장으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태권도 연구소로 발령받아 태권도교본 개정, 국립태권도연구소 개발 준비, WTA 국립태권도연구소 프로젝트, 도장지원 세미나 추진 등을 진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계태권도연수원(WTA)로 발령 후 무주 태권도원에서의 사범지도자 교육과정 시범을 시작으로 시설 보완 등 현재 무주 태권도원에서 시행되고 있는 연수사업의 기반을 닦는데 일조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14년 가을 또 다른 도전을 위해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9년 5월 ㈜태권블록을 창립하게 되었으면 현재 태권도와 블록체인을 결합한 글로벌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2020년에 최연소 8단이 된다고 들었는데?

내년 가을에 8단에 응시를 하게 됩니다. 아마 최연소라고 하면 심사 당시 응시자 중 연령에 따라 결정이 될 것 같습니다만, 제가 빠른 편이긴 합니다. 물론 저보다 젊은 나이에 8단이 되신 분들도 많으십니다. 하지만 최연소가 중요하기 보다는 모든 지도자 분들이 꾸준히 도전하는데 그 가치가 더 있다고 봅니다.

▷ 미국 사범 시절 이야기를 해 달라.

우여곡절이 많습니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에서 쌍둥이 빌딩이 항공테러로 인해 무너져 내린 최악의 테러가 발생 되었죠. 그렇다 보니 미국가는 비자 받기가 더욱 강화되어 미국에 가기로는 했는데 비자는 제가 해결해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난감한 시기였습니다.

그 와중에 비자를 받아 2002년 1월에 미국에 비자를 받아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곳은 미국 중부의 옥수수 생산량 2위를 자랑하는 곡창지대인 아이오와 시더래피즈 (Cedar rapids, IOWA). 공항에 밤에 도착했는데 한국인 사범님이 마중을 나와 주셨고 숙소까지 가는길 옆이 불빛하나 없이 칠흙 같은 어움으로 해안가 옆 바다인줄 알았는데 다음날 보니 모든 곳이 옥수수 밭이었습니다. 쉽게 보면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데 고속도로 좌우 모두가 옥수수 밭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다음날 인사드리러 간 사무실은 아이오와를 중심으로 퍼져있는 정스태권도(Jung’s Taekwondo Academy)의 창립자이며 뉴라이프피트니스(New Life Fitness World)라는 대형 피트니스 센터를 미국내에 여러개 운영하고 Taekwondo Times라는 무술 잡지를 발행하던 정우진 회장님의 사무실 이었습니다.

이미 한국 사범이 2명이나 근무하고 계셨는데 저를 올 수 있도록 한 계기는 제 이력서를 검토하는데 택시운전자격증이 있길래 바로 OK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정우진 회장님은 당시 북한태권도성지조성위원장이었으며 ITF와 WTF간 교류를 진두지휘 해오던 거물이셨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많은 에피소드가 생겼었습니다. 가장 큰 것은 그해 국제태권도연맹 최홍희 총재가 서거를 하셨습니다. 당시 최총재께서는 평양으로 가서 수술을 받기로 되어 있어 입국을 준비 중이었기에 정우진 회장님은 최총재님을 이대로 되면 빨갱이로 남는다며 당시 남한 김대중 대통령 정부와 북한 김정일 정부에 최홍희 총재에 대한 공문을 보내게 됩니다.

사실 이 공문을 다른 사범님과 제가 우체국에 가서 보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공문과 관련한 자료는 인터넷에 공개가 되어 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환경에서 정우진 회장님의 태권도에 대한 사랑과 한국 사회가 아닌 세계인의 시각으로 보는 태권도에 대한 해석을 이때 배울 수 있었다고 보입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제가 미국 도장에서 태권도가 무도로써 어떻게 전달되고 무엇이 중요한 핵심인지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당시 사범 생활은 제가 알고 있던 태권도에 대한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뀌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국에서 성인을 지도했던 커리큘럼과 프로그램의 모티브가 된 것이 바로 미국 정스태권도장의 경험입니다.

▷ 부드러운 외모와 달리 위력격파에도 능하고 힘이 좋다는데? 단련을 중요시하시는지?

단련을 오래했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2.5cm 3장을 붙여서 돌려차기 격파를 많이 보여드립니다. 격파 활용 지도방법 강의를 하다보니 많은 지도자들이 엄두를 못 내시는 겁니다. 의심의 눈초리도 있으시고요.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직접 격파를 현장에서 보여드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위력격파를 얘기하지만 저는 다른 격파 왕들께서 하시는 것처럼 대량의 격파를 하지도 못합니다. 단련을 안하니 당연하죠. 격파의 종류와 개념이 많을 텐데 제가 설파하는 격파의 개념은 사람이 누구나 태어나서 활용 할 수 있는 단단한 부위를 활용하여 격파를 하는 것입니다. 앞축, 뒤축, 뒤꿈치, 팔꿈치 등이 해당되겠습니다. 그래야 실제 위급한 상황에서도 위력적인 공격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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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블록(주) 행사에서 위력 격파를 하는 신창섭 대표

▷ 아들도 태권도를 한다고 들었다. 아들의 태권도 실력은?

저희 아이가 3명이 있습니다. 그 중에 둘째는 ITF 태권도장을 다닙니다. 집에서 지하철타고 걸어가면 40-50분 걸립니다. 그래도 일주일에 세번 꾸준히 1년여 다니는 녀석을 보면 기특합니다. 현재 초록띠 입니다. 이 도장은 3년 정도 되어야 1단에 응시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제 유급자 대회도 나가는 도전을 하고 있는데 그 경험들이 저희 아이에게 큰 인생의 지혜를 줄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7살 막내는 가까운 집 근처 태권도장을 다닙니다. 이제 4개월 정도 되었는데 초록띠 입니다. 넌센스 같죠. 그래도 품새 배운 것, 기본동작 배운 것을 뽐내고 재미있다고 하니 뿌듯합니다. 꾸준히 수련하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2) 태권블록(주)은 어떤 회사인가?

▷ 태권블록(주)은 어떤 회사인가?

작년부터 준비해왔고 태권블록이라는 회사명을 결정하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올해 5월부터입니다. 저희 회사는 태권도에 블록체인 기술을 결합하여 새로운 생태계 조성을 준비하고 있는 스타트업 회사입니다, ICT업계에서 태권도 산업을 보고 사업을 시작하는 기업은 종종 있을 수 있지만 태권도 전문 인력이 직접 CEO를 맡아 하는 회사는 드문 경우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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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1. 태권도판에 팔방미인.마이다스의 손
    신창섭 대표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 성공하시길 기원합니
    태권도를 비롯한 무술계에 새로운 페러다임을 제시하며 이끌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