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시절, 태권도의 형성 시기에는 일본 뿐만이 아니라 중국의 무술들도 태권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태권도 태동기에 주요인물인 윤병인은 당시 일본과 중국북부(만주 지역)에서 다양한 무술을 접하고 배웠다고 합니다. 그중의 하나가 중국 하북성 창주 무술인 팔극권이죠.
1990년대 팔극권의 인기는 일본과 한국에서 대단했습니다. 마츠다 류이치라는 일본의 무술연구가가 대본을 쓴 ‘권아’라는 만화가 출판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무술의 스포츠적인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중국무술에는 뭔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여 팔극권을 천상의 무술처럼 생각하던 때였습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무술 마니아들의 수준은 한 치도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때 논쟁거리가 지금도 반복됩니다. 마니아들이란 수련을 하는 층이 아니라 무술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것도 무술컨텐츠를 즐기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전혀 나쁜 것이 아니죠.
윤병인은 팔극권을 만주지역에서 배웠다고 합니다. 창주의 팔극권이 만주로 가게 된 계기는 인터넷상의 자료를 찾아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현재는 중국 길림성 장춘이 팔극권으로 유명한 곳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태권도의 형성기에는 일본, 중국, 한국의 좋은 무술들과 기술들이 차별 없고 편견 없이 장점만을 골라 만들어지던 시기였습니다. 대한태권도협회가 생겨 5대관이 통합되기 전에는 각자의 단체에서 태권도를 수련했고 교습내용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 이 곳은 현대에 중국의 팔극권을 배워서 태권도 품새 팔기권을 체계화하고 있는 곳인듯 합니다. 미국의 팔기권은 저렇게 팔극권스럽지는 않습니다. 어느 쪽이던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윤병인의 YMCA권법부에는 태권도의 품새 중 하나로 팔극권이 변형된 채로 들어가 있었습니다. 팔극권을 팔기권이라는 이름으로 수련했다고 합니다. 팔극권의 중국발음은 ‘빠지취앤’이나 팔극이 비슷한 발음의 팔기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죠.
아마 처음에는 팔극권의 투로를 그대로 도입하여 태권도의 하나로 수련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팔극권은 전형적인 태권도 품새의 모습에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가 태권도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시기였을 것입니다.
대한태권도협회가 생기면서 태권도 관들이 통합되고, 발기술 위주의 경기 규칙을 제정하는 바람에 그 창의적인 시기에 퓨전/융합되었던 중국의 무술들은 지금은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태권도 역사 초기에 미국으로 진출했던 사범들 체육관에서는 아직도 팔기권을 가르치는 곳이 있습니다.
윤병인 사범이 더 오래사시고 태권도협회 안에서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면 지금 태권도 품새 안에 아직도 팔기권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랬다면 마츠다 류이치가 팔극권을 유행시키기 50년 전에 한국인들은 팔극권을 열심히 수련하고 있었을 테고 ‘권아’라는 만화가 인기를 못 끌었고 팔극권의 원류가 창주가 아닌 장춘으로 인식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어쩌면 어느 평행우주에서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중국과 일본으로 나갔던 많은 한국인들이 배웠던 무술은 팔극권과 대동류합기유술, 가라테, 검도, 유도가 전부일까요? 혹시 팔괘장, 형의권, 심의권 등의 무술도 어떤 호기심 많은 한국인이 배우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