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며, 한반도 분단과 깊이 얽혀 있다. 놀랍게도 북한 태권도의 ‘아버지’로 불리는 최홍희 장군은 한때 남한의 고위 장성이었으며, ‘태권도’라는 이름을 만든 장본인이다.
1918년 현 북한 지역에서 태어난 최홍희는 일본에서 가라테를 수련했다. 이후 남한 군의 핵심 인물로 부상하여 자신의 부대를 ‘태권도 부대’로 명명하기도 했다. 그는 다양한 무술 스타일을 ‘태권도’라는 이름 아래 통합하고 대한태권도협회를 설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그의 독단적인 방식과 다른 무술인 및 남한 정부와의 관계 악화로 인해 1966년 국제태권도연맹(ITF)을 창설했다. 이 조직은 남한 정부의 대한태권도협회와 경쟁 관계로 인식되었다. 1972년 최홍희는 유신 독재에 반대하며 캐나다로 망명했다.
캐나다에서 최홍희는 1970년대 후반부터 태권도가 정치적 이념을 초월해야 한다고 믿으며 북한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그는 북한에 태권도를 도입했고, 이는 기존의 격투 스포츠인 격술을 대체하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행보는 남한에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ITF 태권도는 한국에서 사라졌으며 최홍희는 남한 태권도 역사에서 사실상 지워졌다.
한편, 강력한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세계태권도연맹(WT)은 남한에서 빠르게 성장하여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었다. WT는 ‘전통과 정통성’을 적극적으로 강조하며, 발전하였다.
최홍희는 2002년 북한 평양에서 사망했으며, ‘애국자’로 추앙받았다. 그의 유산은 개인과 문화적 요소가 이념적 갈등의 희생양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그가 태권도를 통해 남북 통일을 염원했지만, 현실에서는 ITF와 WT가 각기 다른 정체성과 역사를 지니게 되었다.